교명

"시대를 이끄는 높은 안목과 지혜를 갖춘 선비들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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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翰)은 원래 다른 새들보다 높은 곳을 날면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상상의 새를 의미하는 글자입니다. 당나라 때 이 새를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선비에 비유하여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선비들이 모여 숲(林)을 이룬 곳을 한림(翰林)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중국에서는 당-명-청대에 걸쳐 시대를 초월하는 안목과 범상(凡常)을 뛰어넘는 지혜를 갖춘 최고 지성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한림원이라 일컬었습니다.

 

영어의 ‘아카데미(Academy)'라는 단어는 옛날 그리스에서의 고등교육기관을 뜻하던 아카데미아에서 변천되어온 단어였는데, 학문과 예술 영역에서 지도적인 인재들이 모인 단체를 그렇게 불렀으며, 특히 유럽에서는 중심적인 학자 단체의 뜻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이 아카데미를 우리말로는 보통 한림원으로 번역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학자들로 구성된 상문사(詳文師)를 신라 경덕왕 때 한림이라 고쳐 부른 때부터 쓰기 시작했으며, 뒤에 한림원에 한림학사를 두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임금의 명령을 받아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 있었는데, 이를 처음에는 원봉성(元鳳省)이라고 하다가 뒤에 학사원이라 고쳤고 현종 때 다시 고쳐 한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림원의 관원으로 판원사(判院事), 학사승지(學士承旨), 학사(學士), 시독학사(侍讀學士), 시강학사(侍講學士) 등과 함께 의관(議官)도 두었습니다. 한림원은 그 후, 문한서(文翰署), 사림원(詞林院),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등으로 명칭이 바뀌다가, 1356년(공민왕 5년)에 다시 한림원으로 환원되었고, 1362년(공민왕 11년)에 예문관(藝文館)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389년에 다시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으로 바뀌어 조선왕조에 계승되었는데, 1401년(태종 1년)에 예문관(藝文館)과 춘추관(春秋館)으로 분리되어 독립관청으로 되었습니다.이들은 1894년의 갑오경장 때까지 존속하였는데, 예문관은 임금의 칙령과 교명을 기록하였고 춘추관은 국사를 기록편찬하였습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빼어난 인재들의 숲'을 한림이라 불렀습니다. 우리 한림대학교의 교명은 바로 이 한림에서 따온 것입니다. 한(翰) 림(林)을 지향하는 한국 최고의 지성인 집단을 지향하는 대학이기 때문입니다.

 

한림대학교는 세속의 이(利)를 좇는 뭇 새들의 위에서 높이 날면서 넓고 높은 안목으로 세상사의 흐름을 이끌어 나간다는 한비정신(翰飛精神)을 교육정신으로 삼고 한국의 진정한 한림이 될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담당자 : 이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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